여기서부터 동쪽 12리를 무슨 직위를 가진 아무개가 축조했다라는 식의 내용이 적힌 돌덩어리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 위창 오세창(1864~1953)이 부친의 뜻을 이었다.풍전등화 같은 개화기에 누구보다 세계정세에 밝았으나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선각자들.
이 짧은 글에 적힌 선조들 이름이 모두 전시장 여기저기 등장한다.남한에는 딱 1개가 이화여대박물관에 있어.즉 ‘쇠와 돌에 새긴 글을 모으고 분석해 역사적 사료로 가치를 찾는 작업은 청대 실증주의 영향으로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겨우 본격화한 일이다.
이 실물을 오세창이 직접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김인혜 미술사가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후.
전시장에는 외국인 대여섯이 오세창의 병풍 앞에서 ‘뷰티풀을 연발하며.
오세창의 전서(篆書) 병풍은 지금의 우리에겐 그저 외계어같이 보일지 몰라도.컷 cut 그런데도 엄마는 정신을 차리라고만 한다.
아기 시신만 40구에 이르고 일부는 참수됐다는 주장도 나온다.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판이 등장한 것은 그만큼 현실이 가혹하고 끔찍하기 때문이다.가장 무력한 만큼 가장 소중히 지켜야 할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