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강병을 위한 개혁도 이미 너무 늦었다.
이 내용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그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의 위험성을 보지 못하고 청의 위협과 조선 정부의 무능만을 봤다.
자립을 위해 대한제국을 선포했다.그렇다고 해서 다른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중앙포토] 이 시기를 바라보면서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논쟁점은 동아시아 국가 중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과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 소재 문제였다.
정상적 근대화의 길이 아니었다.근대화의 실패가 식민지화와 반(半)식민지화를 야기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과적으로 볼 때 근대화의 성공이 제국으로.
이러한 이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학계의 논쟁이 살아나야 한다.권력을 앞세워 반대 세력을 억누르기도 한다.
그러나 선비(儒)란 모두 올바른 유자(儒者)는 아니었다.(‘속유론) 율곡과 다산의 참선비론은 일치한다.
바로 진유(眞儒)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참선비가 없었던 것도 불행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