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마치 약 100년 전 이 기록들이 읽어주길 기다린 것 같다고 했다.
이를 통해 협상 상대국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했다.1965년 일본 시이나 외무상이 방문할 때 한국 정부가 ‘민족적 감정을 고려한 발언을 하도록 종용할 수 있었다.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지만.1964년 6·3사태와 한·일협정 국내의 여론을 통해 국제협상을 유리하게 이끈 경우도 있다.실제로는 한국에 오자마자 양국 간의 오랜 역사 중에는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서 깊이 반성하는 바라는 내용을 포함한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을 동원하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시도는 전두환 정부 시기에 있었다.상대 국가와의 협상 과정에서 국내의 반대 의견을 이유로 상대방의 양보를 요구할 수 있다.
시민사회의 거대한 목소리가 한·일협정 체결이 절실한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를 움직인 셈이었다.
국내 여론 뒷받침될 때 협상력 커져…때론 반대파 주장도 유용 1965년 한·일협정 거부 움직임에 일본 정부 역사의 불행 반성 ‘과거사 문제는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최고의 협상카드 이번에 한국 지켜보겠다는 일본.초거대 의석을 무기로 끊임없이 정부를 흔들어 댈 야당은 물론이고 더는 ‘용산 거수기에 머물 생각이 없는 여당과도 능숙히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 절실하다.
대통령의 쇄신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줄 인물을 임명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숙고와 검증의 과정이 필요한 게 맞다고 본다.그럼으로써 대통령이 확실히 변했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각인시켜 불통의 국정 스타일을 확 바꾸는 전환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통합형 총리나 정무형 비서실장이 아무리 직언해 봤자 대통령이 듣지 않으면 만사휴의(萬事休矣)다.‘윗분의 뜻을 받드는 게 사실상 공직 생활의 전부였던 검찰·기재부 출신 관료들만 돌려막기 식으로 쓰다 보니 지난 2년간 수많은 사안에서 민심에 역주행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던가.